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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의 한 실험실 © 무료사진
김정현
한 달 전이었다. 건국대의 선도 단과대학인 생명과학특성화대학에 교무처장 간담회가 소집됐다. 교무처장은 구조조정으로 자신의 학과를 잃은 이공계열 교수이기도 했다. 학생들을 모은 교수는 단과대가 둘로 나뉠 것이라 밝혔다. 단과대 학생회장은 “교수들도 1주일 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단과대학에는 교육부로부터 CK-2 사업을 받아온 특성화학부가 속해 있다. 교무처장은 부인했으나, 5억을 주는 기존 사업 대신 150억 어치 프라임산업을 받기 위함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CK-2 사업과 프라임산업은 중복 지원되지 않는다. 게다가 올해는 이 사업으로 인한 구조조정으로 새로운 2개 학과제가 시행된 첫 해였다.
지난 4일, 건국대는 프라임산업에 선정되었다. 이 사업은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PRIME)을 선정하고 3년 간 150억 원씩 지원한다. 교육부는 그 조건으로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건국대는 선정대학 중 최대 규모의(521명) 학과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사업’(<동아> 등)에 선정된 학교는 축제 분위기다. 탈락한 경쟁대학에서는 실익 없는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 때문에 <조선>은 4일 1면에 “문과대 정원 줄여 공대 1만명 늘린다”는 제목을 붙였다.
프라임산업으로 이공계가 쾌재를 부를 것이라는 것은 오판이다. 이공계 내에서도 소외된 학과에서는 패배주의가 만연해 있다. 사업에 선정되지 못한 기초과학 전공, 일부 공학계열 학과들이다. 흘러간 전통만을 강요하는 선배들, 힘이 빠진 교수들을 보면서 신입생들은 난파선을 버리듯 전과 또는 고시를 준비한다. 소위 ‘잘 나가는’ 학과라고 다를 것은 없다. 자연과학의 오묘한 섭리를 고민하기보다 사업을 따올 수 있는 연구를 잘 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교수들은 스스로를 개미라고 이야기하며, 너희들이 성공해야 한다고 되뇐다. 현실에 꿈이 꺾인 부모들이 자식에게 모든 기대를 거는 빗나간 사랑을 느낀다.
솔직히 150억이 다급하다고 이야기하길 바랐다. 대학알리미를 보면 작년 총 재정지원 실적 1위인 서울대는 5천억 원이나, 타 대학은 많아야 반도 못 미친다. 이조차도 서울 우선, 상위 학벌 우선이다. 돈이 없으니 학계를 바꿀 실험적 시도는커녕 학계 흐름에 맞는 논문 쓰기조차도 버겁다. 프라임 사업이 단군 이래 최대의 사업이라는 말은 비극이다. 한국 사회는 한 번에 많게는 500억 이상 대학에 투자한 적이 없었다는 의미다. 학계는 항상 경제논리에 패배해 왔었다.
안타깝다. 누군가는 이마저도 나라에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사업 실적 올리기에 급급한 현 상황에서 노벨상을 기대하거나, 패러다임을 바꾸는 연구를 쏟아낸다는 것은 공염불이다. 비록 핵무기가 단초였으나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5년 간의 사회적 토론을 거쳐 기초과학에 장기적인 투자를 주도하는 국립과학재단 (NSF)를 창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냉정하게 비추어 볼 때, 유의미한 논쟁도 시작하지 못하는 한국 과학정책의 오늘은 1950년대 미국만도 못한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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