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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따봉충에 대하여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3. 15. 17:30

따봉충에 대하여

이자연

 

일상을 공유하는 매개.’ 단 하나의 문장으로 SNS를 정의 내릴 수 있다. ‘일상이 가진 힘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위대한 건지 사람들은 자신의 나날을 온라인으로 드러내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요기능은 이러한 일상을 일상답지 않게 만드는 데 큰 도화선이 되었다. 내게는 꿈도 못 꿔볼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아무개 씨에게 어쩌다 한번 벌어진 행운이 언제나 반복되는 일인 마냥 느껴지기 때문이다. 허세와 경제적 박탈감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짝꿍이라고 누가 생각이라고 했겠냐는 말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타인의 생활에 대한 감상이 수치화 되는 것이 어떤 사건에 대해 주목할 가치를 증명해 주기도 했다. 이 영상이 10억 뷰를 찍었다더라, 혹은 이 게시글에 좋아요가 1만 개가 넘었다더라 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숫자 놀음은 일상끼리의 경쟁을 부추겼고, 너도나도 일상적이지 않을 것들을 일상인 냥 게재하기 시작했다.

 

억압된 욕망이 왜곡되는 과정을 거치면 사회적으로 불순한 양상의 비행을 만들어 내기 일쑤다. 당사자가 그를 인식하지 못하면 그 양상은 더욱 거칠고, 날 것 그대로이며, 비이성적이다. 그렇게 누군가는 좋아요를 구걸하며 자동차 바퀴에 오른 발을 부러뜨리고, 겨드랑이 에 밥을 비벼먹으며, 심지어 변기통에 라면을 부어 먹기도 했다. 말 그대로, 좋아요를 구걸하고 호소하는 '따봉충'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쓰고 보니 비이성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이성을 받고, 비상식을 얹으련다. 이러한 무식한 행동을 하던 이들이 일관되게 하는 말은,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기업에게 명 당 얼마를 주고 팔기 좋다는 것이다. 어느 심리 전문가는 돈을 벌기 위해 자학을 하는 행동이 보험금을 타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사고를 벌이는 이들과 비슷하다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개인적인 SNS에 게재할 뿐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결코 개인의 영역으로 여길 수 없는 많은 반증이 있다. 애초에 영상이며 게재글, 사진에는 여러분이라는 타인을 향한 명칭이 들어가 무언가를 호소하며, 그것이 게재되면서 타인에게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구조를 생각하면 더더욱 이치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그런 식으로 경제 활동하기를 선택했다고 백 번 양보해서 이해하다 치더라도, 그것의 피해를 고스란히 연고도 없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는지는 전혀 납득이 안 되는 것이다.

 

백 번 양보하여 그들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사정을 가련하다고 여기면, 그들은 자신의 생기 넘치는 에너지를 어디로 발산할 줄 모르는 이들이다. 게다가 인간다움을 포기한 그들이 맞바꾼 객체가 결국 이라는 것에 강한 연민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것들이 행동의 이유가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젊은 시절 단순히 철없어 하는 일이라고 하기에 그들이 저지른 것들이 너무 많고, 정도가 심하다. SNS가 상대적으로 다른 매체보다 가벼운 특성을 가진 만큼 영향력이 방대하다는 사실을 그들이 이해를 했다면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들 스스로 비상식적인 자신의 행동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이런 행동을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게끔 만든 온라인 윤리 교육의 부재도 심각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온전한 책임이라고 볼 수 없다. 썩은 물을 거둘 때가 왔다.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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