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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성폭행 사건을 대하며 지양할 태도 세 가지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6. 24. 15:55

성폭행 사건을 대하며 지양할 태도 세 가지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은 자신의 생일 파티 겸 지인들과 찾아갔던 유흥업소에서 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그녀에 의하면 지난 6 4, 자신이 거절 의사를 분명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을 강제적으로 화장실로 이끌고 가서 성관계를 맺었다고 전했다. 평소 그의 성실한 행실과 선한 인상을 좋아했던 대중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많은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오가는 말들은 우리가 그동안 성폭행 사건을 여겨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성폭행 사건과 관련하여 반드시 지양해야 할 태도 세 가지를 발견했다. 성적인 관계에서 힘과 권력의 불균형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제 3자가 가치개입을 하는 것이 심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대중들의 성숙한 태도를 고취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에게 공감하는 것

성추행, 성폭행, 성차별 등 성별에서 파생되는 폭력에는 반드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강자약자로 나눌 수 있겠다. 대부분의 경우 강자는 남성이고 약자는 여성이다. 성폭력이 이미 발생한 상태에서, 많은 이들의 질타와 비난이 이어지면서 가해자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반성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 3자의 비난과 질타가 있어야만 반성하고 죄책감을 느낀다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맞다. 그러지 않고서는 애초 그런 범죄를 저지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때 많은 이들이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가해자에게 공감하는 것이다. “저 사람도 가정이 있는데…부터 시작해서, 가장 흔하고 전형적인 말, “원래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니야까지 말이다. 박유천의 경우, “쟤만 룸살롱 갔겠어. 운이 안 좋아서 걸린 거야. 불쌍하다.”, “지금 공익 근무 하면서 얼마나 힘들까?” 정도가 이에 해당되겠다. 상식적으로 공감의 대상으로 약자보다 강자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증명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성폭력은 가해자의 일방적인 폭력들 중 가장 대표적인 범죄이다. 그 죗값이나 용서의 문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피해자만이 할 수 있다. 왜곡된 방향의 공감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양비론적 태도

양비론(兩非論) 둘 다 잘못이 있다고 판단해 버리는 태도이다.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다를 게 없다고 말하는 것인데, 양비론은 자칫 잘못하면 상황을 방관하는 폭력을 행사한다. 이를테면 부당해고에 대응하여 시위를 하는 노동자가 살수차 공격에 격분하여 거친 시위의 형태를 띠게 될 때, ‘노동자나 경찰이나 그게 그거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야기될 때에는 분명히 그 안에 숨겨진 힘의 불균형이 있다. 정확한 근원을 따져보기도 전에 겉에서 드러나는 잘잘못을 논하는 것은 피상적인 판단에 불과하다. 룸살롱에 찾아 간 박유천이나, 그런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직업여성이나 결국 잘한 게 전혀 없다는 식으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만다. 문제를 판단하는 일이 꼭 누군가의 편을 들어주는 것처럼 느껴져 오히려 둘 다 잘못했다는 입장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하지만 누구의 편을 들어주는 것과 양비론적 태도를 보여 문제를 방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 세심하게 문제를 들여다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직접적으로 해결책을 강구할 수 있다.

 

성 노동자의 직업 특수성을 성폭행 사건에 개입시키지 말 것

성 노동자. 단어만으로도 자극적이어서 이들과 관련된 사건이나 문제는 늘 논란이 되곤 한다. 가끔 우리는 성 노동자는 보통의 사람이 아니고, 그래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권리나 가치를 그들에겐 없다고 마음대로 치부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이번 박유천 성폭행 사건이 있고 나서 주변에서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은 거기서 일 하면서 성폭행 고소를 하냐는 것이었다. 성폭행을 고소할 수 있는 권리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유흥업소에서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행위에 꽃뱀이라거나 돈을 노렸다거나 하는 자기만의 해석을 붙이는 것이 불편했다.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지만, 이번 고소건의 이유는 매우 명징하다.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제로 가진 것.’ 노동자이기 때문에 더 노동해야 하고, 어머니이기 때문에 모성을 가져야 하며, 학생이기 때문에 오로지 공부만 해야 한다는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지 다양한 사건과 사고로 우리는 목격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성폭행 고소의 성역을 긋는 것은 지금껏 그래왔던 태도를 일관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제는 성폭력을 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이토록 강자의 시선을 담고 있다면 이 문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 ()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고질적으로 앓아온 잘못된 태도를 응당 버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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