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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국정교과서 그 너머

쫑티 2016. 12. 25. 11:35

국정교과서 그 너머

쫑블리


 2014년 11월 10박근혜 대통령은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역사 국정교과서의 필요성을 강변했다그의 발언은 평소 문장의 주술 구조를 바르게 끝맺지 못하고 시선 처리가 어색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이와는 달리 자신감 있고 당당한 어조로 분명하게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더군다나 정부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다른 교과목과는 달리 역사는 2017년 3월부터 개정 국정 교과서를 적용하겠다며 "박정희 탄생 100주년"에 맞춘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혹을 키웠다진정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캐치프레이즈와 같이 본인의 숙원 사업이라는 확신을 하기에 충분했다.

 

 집필진 선정과 집필기준 마련과정 역시 박정희 대통령의 향수를 떠올리게 했다국사편찬위원회는 비공개 방침을 고수하며 유신 시대에나 가능할 법한 밀실 행정을 자행했다집필기준 역시 이전 교과서와 달리 비공개로 일관함으로써 헌법상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보장 원칙을 위원회 스스로 파괴하였다집필기준을 사전에 공개하고 교육 당사자들과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기준을 정립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말이다이처럼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사례로 이진모 한남대 교수의 말을 빌자면 독일에서 이른바 단일한 정체성을 추구했던극단적인 전체주의를 표방하다 패망한 나치 시대와 동독 시절뿐이다또한계속되는 우경화 속에서 퇴행적 역사 인식을 드러내는 아베 정부가 수정주의적 역사교육을 꾀하는 것과 유사하게 진행된 역사교과서 국정화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창의성과 다양성선택자발 등의 아름다운 단어들로 공람 문서들을 내려보내던 교육부가 손바닥 뒤집듯 국정 교과서를 옹호하는 모습은 목불인견이다뿐만 아니라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앞장선 인사들이 과거에는 '국정교과서 반대론자'였던 사실은 학자적 양심의 값어치가 반 푼어치도 없다는 자괴감을 불러일으킨다특히 김재춘 전 교육부 차관은 '수준별자율선택다양성'을 기조로 한 제7차 교육과정의 책임연구자였다더군다나 국무총리실이 2014년 작성한 내부문건에서 '정부의 역사 해석권 독점 비판', '교과서 개발단계의 정치 쟁점화 우려', '학습자의 교과서 선택권 제한등을 국정교과서의 단점으로 나열했다는 점은 정권이 현재 국정교과서의 문제점을 외면하고 아집을 고수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지난 11월 28일 공개된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현대사 부분이 특히 심각하다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25쪽 분량에서 1차로 찾아낸 오류만 80건이 넘", "도저히 전문가가 쓴 책이라고 볼 수 없는 불량품"이다. 1948년 남북협상의 사실관계나 농지개혁 기술에서의 오류, 1965년 한일협정과 유신헌법의 내용 왜곡이 두드러진다또한 '대한민국 수립'과 같이 뉴라이트 세력이 집요하게 주장하는 건국절을 지향하는 용어와 같이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부추기는 것이 눈에 띈다서중석 교수에 따르면 "박정희 경제정책의 실패나 경제 악화에 대한 비판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며 군 정훈 교재처럼 수출 주도의 경제개발체제와 새마을운동중화학공업과 철강산업의 육성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등 학생들에게 편향된 역사관을 주입하려는 의도가 투명하다.

 

 한편 교과서 발행체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먼저 국정제는 국가가 직접 한 종류의 교과서를 만들어 모든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사용토록 하는 제도다현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방향이며 북한 등이 채택하고 있다다음으로 검정제는 개인이나 출판사가 여러 종류의 교과서를 만들어 국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심사를 거쳐 사용하는 제도다국정화 이전의 한국이 검정제를 채택하고 있었다끝으로 자유발행제는 개인과 출판사가 자유롭게 교과서를 발행하는 제도다한국교육개발원의 2014년 주요 국가 자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조사에 따르면 미국과 핀란드프랑스영국 4개국은 자유발행제를일본중국독일 3개국은 검정제를 적용하고 있다정부의 국정화 방침이 시대착오적이며 퇴행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번 국정 교과서 논쟁을 바라보며 1990년대 초반, PC 통신에 올라오던 '똥떡', '굶어/북어등이 떠올랐다도덕국어 교과서 표지를 볼펜으로 덧칠해 과목의 이름을 바꾸어 놓는 유희였다이는 단순히 교과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을 넘어 교과서에 대한 저항으로획일화된 공교육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지기도 했다그 때에서 20년도 더 지났는데, 2016년의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교과서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기존 교과서에 6.25가 남침이라는 게 명확히 기술되어 있는지북한의 주체사상을 제대로 비판하고 있는지 등을 집요하게 묻는 식으로 말이다또한 개혁 진보 진영 역시 이를 변호하고 방어하는 데 급급한 것이 실정이다기존 검인정 교과서 역시 촘촘한 교과부의 검정기준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에서교과서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은 본질에서 변화하지 않았다.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박근혜 정권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던 주요 정책들도 재조명되고 있다이준식 교육부총리는 지난 7,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교육부가 내년 3월 국정 역사교과서 강행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세간의 분석을 나오게 했다국정교과서 백지화를 넘어정책 입안자들이 초래한 사회적 비용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물어 제국정교과서 추진의 싹을 막아야 한다또한 박근혜 정권 이후의 역사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며자유발행제뿐 아니라 교과 내교과 간 통합적 교육과정의 이론과 실제나아가 미래 역량을 갖춘 민주시민 양성을 위한 교육적 방향에 대한 더 많은 논의와 실천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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