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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꽃벽은 없다

쫑티 2016. 12. 10. 14:22

꽃벽은 없다

쫑블리


 헌정을 짓밟고 구시대적 정경유착을 재현한 박근혜 대통령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920, JTBC가 재벌들이 출연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최순실 씨가 관여했다고 보도하면서 시작된 최순실 게이트박근혜 게이트로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1029일부터 123일까지 전국 각지에서, 주최 측 추산 최대 2백만 명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정치권 역시 민의에 따라 대통령 탄핵안을 9일 의결하기로 했으며 부결될 시 야당 의원 총사퇴 결의안을 제출하였다. 2008년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이렇게 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온 것은 처음이다. 누군가는 서울 도심에 백만 명이 넘게 모이는데도 쓰레기가 없고, 경찰과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평화시위라며 자랑스러워하라고 말한다.

 

 1119,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차 촛불집회에서 예술 크라우드 펀딩 세븐픽처스는 꽃 그림이 담긴 스티커를 경찰의 차벽과 방패 등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제안자인 이강훈 작가는 자신의 트위터에 꽃 스티커는 차벽을 꽃벽으로라는 퍼포먼스를 위한 것이라며 폭력적이지 않지만 적극적인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집회 당일, 광화문에서 내자 로터리까지 늘어선 차벽은 29천여 장의 꽃 스티커로 뒤덮였다. 그런데 일부 시민들은, ‘의경이 고생한다며 자정이 넘도록 스티커를 떼어냈고 착한 시민에 언론의 카메라와 칭찬 세례가 쏟아졌다. 뒤이어 작가는 21, 탈착이 쉬운 스티커를 제작하여 다음 집회에서도 퍼포먼스를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경찰들에게 위로의 글을 남겨달라는데,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결국 백남기는 물대포의 모습을 한 국가권력에 목숨을 잃었고 한상균은 불법시위를 주도했다며 8년 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차벽의 모습을 한 국가권력에 가로막혔다.

 

 1112, 난 친구와 민중총궐기에 함께했다. 종로에서부터 이어지는 행렬에 이미 서울 시내 주요 도로는 통제 중이었다. 광화문 광장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본대회가 끝나자 행진이 시작되었고 광화문을 지나, 집회에 나오기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이르지 못했던 서울지방경찰청이 눈에 들어온 순간 나는 벅찬 감격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경복궁역 교차로는 차벽으로, 1, 3번 출구는 경찰들로 막혀 있었다. 차벽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대치하던 시민들은 버스를 흔들거나 위에 올라가려는 사람에게 평화시위! 내려와라!”를 외쳤다. 오전 1시가 넘어가며 교차로는 눈에 띄게 한산해졌다. 250분을 전후해 경찰은 방패로 시민들을 밀어 올리며 해산명령에 불응하는 시위자를 연행해갔다. 인원이 많을 때는 눈치만 보다가 그 수가 줄어들자 또다시 폭력 진압을 자행했다.

 

 1125,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상경 과정에서 충돌이 있었다. 경찰이 도로를 막고 화물차량을 몰고 양재 나들목을 통해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던 농민 7명을 교통방해 혐의로 연행하는 등 농민들의 진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연행자 석방과 경찰 사과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인 전농 회원들에 경찰은 강제해산으로 답했다. 이 과정에서 김영호 전농 의장 등 3명이 다쳤고 30여 명이 연행되었다. 밤늦은 시간에 벌어지는 경찰의 뻔뻔한 진압에 발만 동동 구르며 페이스북 생중계를 지켜보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반면 2만 명이 청계광장에 모였던 1029, 우리는 이순신 동상까지 진출했다. 차벽의 해산방송에서는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같은 생소한 표현이 튀어나왔다. 집회에 쏠린 눈과 귀를 의식해서인지 경찰은 함부로 집회 대오에 다가오지 못했다. 그래서 공권력이나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폭력집회를 나는 믿지 않는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된 국가에서 경찰은 도로교통법 방해를 들먹이며 행진을 막는다. 합법과 불법의 준거는 오직 경찰청장의 세 치 혀에 혹은 법원의 판결에 달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앞선 경험을 통해 나는 폭력 불법집회는 첫째,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가? 둘째, 집회 참가자의 수가 물리력으로 진압할 때 후폭풍을 불러올 정도인가? 와 같은 질문의 가부에 달려 있다는 귀납적 결론에 이르렀다. 전경 복무 시절, 진압훈련에서 울려 퍼지던 구호는 합법촉진 불법필벌이었다. 우습지 않은가? 시민의 정당한 저항권 행사를 공익을 침해한다며 공권력이 방해하고, 이에 대응하는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가면서 합법과 불법을 논한다는 게. 준법과 질서의 이름으로 민중의 분노를 통제하려는 공권력과 그에 부역하는 펜대를 꺾지 않는 한, 우리에게 꽃벽은 없다. 백남기 농민을 살해해놓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비인간적인 국가 권력의 또 다른 모습인 차벽을 마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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