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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 ‘클로저스’ 성우 교체 논란을 보며
쫑블리
7월 18일, 게임 ‘클로저스’의 신규 캐릭터 티나의 성우 김자연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트위터) 계정을 통해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티셔츠를 입은 ‘인증샷’을 올렸다. 그리고 만 하루도 되지 않아서 ‘클로저스’의 제작사 넥슨 측은 그를 ‘퇴출’하는 결정을 발표했다. 이 결정에 대해 넥슨은 게임 이용자들의 우려 섞인 의견을 확인한 결과라고 밝혔다.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 노동당 여성위원회는 논평을 통해 넥슨의 이 같은 결정을 규탄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추모하고 여성혐오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페이스북 페이지 ‘강남역 10번 출구’ 역시 넥슨뿐 아니라 페미니스트 여성 전반의 생존권 문제를 외치기 위해 7월 21일, 홍대 나루수산 앞 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조금 늦게, 7시 30분쯤 친구와 도착한 집회 장소에는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였지만 하나 둘씩 모인, 더러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손에는 “목소리를 지우지 마라”는 손피켓이 들려있었다. 사회자가 있었지만 집회는 자리에 함께한 여러 시민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싸워야만 했던 개인의 경험과 이번 사건에 대한 증언들이 쏟아졌다. 그 중에서도 "저는 메갈을 해본 적이 없지만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더라고요. ‘너는 메갈이고, 페미’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대답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은 ‘그래. 나는 페미니스트다. 남성과 동등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기로 했습니다."와 같은 어느 시민의 말이 인상 깊었다.
시민들의 열띤 호응으로 집회가 잘 마무리될 무렵, 어느 남성이 손을 들고 외쳤다. “이 자리에 계시는 분들이 제 말을 들어주실지 모르겠지만, 준비해온 걸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고 남성은 “죄송하지만 제가 진정한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와 같이 말을 이었다. 사람들의 실소가 터져 나왔다. ‘진정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눈에 보기 좋고 자신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것들을 가리키기 위해 그러한 수사를 사용하는 것을 익히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성은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페미나치” 운운하기 시작했다. 어느 여성이 “우와, 동아시아에서는 여성도 나치가 될 수 있군요? 누가 제게 가스실 좀 가져다 주시겠어요?”와 같이 촌극을 펼치자 더 이상 할 말이 떨어졌는지 남성은 초라하게 홍대입구역 9번 출구 방향으로 사라져갔다.
집회를 다녀오고 뜻을 같이하는 이들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며 작은 고양감에 젖었던 것도 잠시, 정의당 중앙당은 당 문예위의 논평을 철회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예술인이 정치적 의사 표현을 이유로 부당하게 노동권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선의에서 작성된 논평이었으나 당사자가 그렇지 않다고 밝혔으니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해당 논평이 부당한 노동권의 침해라는 본 취지의 전달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의당의 입장은 실망스러웠다. 위와 같은 논리라면 현대중공업이 저성과자라는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더라도 법률이 이를 보장하고, 해직자가 항의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부당한 노동권 침해가 아닐 것이다. 프리랜서에 가까운 성우라는 직업의 특성과 시장독점적 지위를 지닌 넥슨과의 권력 차이를 생각할 때 김자연씨가 사측에 부당함을 제기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본 취지의 전달에 실패했기 때문에 논평을 철회해야 한다는 것 역시 무책임한 논거이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사회분열의 진원지로 낙인찍힐 때 더 이상 국정화에 반대해서는 안 되며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움직임에 종북 딱지가 붙을 때 역시 주장을 철회해야 옳다. 원내4당으로서 첨예하게 갈등이 대립하는 문제에 대해 “의도가 그게 아니었는데 잘못 이해한 모양이네. 그럼 내 주장을 접도록 할게.”라니, 몹시 당황스러웠다.
페미니스트를 지향하는 사람인지의 여부를 떠나, 김자연씨의 문제는 개인의 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노동권을 침해 받는 것이 온당한지 묻는, 아주 기본적인 문제이다. 지난 정부 때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에 대한 징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번 일에도 역시 같은 잣대가 필요하다. 또한 “소녀는 왕자가 필요하지 않다.”와 같이 아주 온건한 여성주의적 목소리에까지 ‘메갈’이라며 딱지를 붙이고 목소리를 지우려 하는 일은 결코 온당하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여성혐오적 사회현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저항하는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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