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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다’는 말의 울타리
"그 남자는 너무 게이 같았어.", "걔 내 스타일 아니야. 좀 여자애 같아." 대화를 나누던 친구는 유난히 ‘~같다’는 말을 자주했다. 게이 같은 게 뭐고, 여자애 같다는 말이 어떤 이미지를 가리키고 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으면서도 그 말이 주는 불편함에 ‘여자 같다, 남자 같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는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다운 것, 여자다운 건 구분할 수 있어. 남녀차별 그런 걸 떠나서.” 당시 나는 그녀의 대답에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수긍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무리 그래도’ 남녀간에 구별점이 있다는 의견에 퍽 당황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그 구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여자 같다’는 말이 보편적으로 띄고 있는 성질들은 요리를 잘 하고, 조신하고, 친절하며 아기자기한 물건을 좋아하는 것들을 말한다. 반면 ‘남자 같다’는 말에는 거칠고, 행동모양이 강하며, 자동차나 스포츠 따위를 좋아하는 성향이 담겨 있다. 결국 남녀의 성질이라고 구별된 것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사회적으로 성별마다 특정하게 행동하도록 강요해온 것들이었다. 문제는 애초에 편협한 가치관이 녹아 든 채, 교육 받아온 행동들을 가지고 ‘상대적으로 여자들이 이런 성향이 있네, 상대적으로 남자들이 이런 성향이 있네’ 라며 성별간의 특성으로 일반화 하는 데에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같다’는 말은 어떻게 생각해도 도저히 ‘남녀차별 그런 걸 떠날 수’ 없는 문제이다.
명명(命名) 혹은 정의를 내리는 작업은 늘 신중해야 한다. 말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도록, 대상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알기도 전에 미리 ‘무엇스러운’ 이미지를 전달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러한 일환으로 2000년대 초반에 영미권에서는 ‘중립적인’ 단어를 이용하여 편향된 이미지를 지양하는 작업을 착수했다. 여성의 결혼 여부 사실을 알리는 ‘Miss’와 ‘Mrs’대신 ‘Ms’로 통일하기 시작했고, ‘Fireman’이 아니라 ‘Firefighter’로, ‘Stewardess’와 ‘Steward’를 대신하여 ‘Flight attendance’로 고쳤다. 차별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단어는 수면위로 올라 문제화 되었고, 그대로 개정되었다.
누군가는 ‘여성/남성스럽다’는 말이 굳이 남녀 차별을 뜻하는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여겨온 ‘이미지’를 의미할 뿐이고 이제는 하나의 단어처럼 고착되어 다른 단어를 쓰는 것이 어렵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00스럽다’는 말을 대체할 수 있는 말들은 얼마든지 있다. 단아하다, 상냥하다, 친절하다, 다정하다, 괴팍하다, 말이 많다, 수선스럽다, 옹졸하다. 결코 성별을 드러내지 않는 말들인데다가, 구체적으로 대상을 표현할 수 있으니 애매하게 뭉뚱그려진 ‘00스럽다’는 말보다 더 좋다.
SBS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영진’이 말한다. “누가 그러더라. 세상에서 젤 폭력적인 말이 남자답다, 여자답다, 엄마답다, 의사답다, 학생답다. 그런 말들이라고.” 수많은 차별 속에 말이 주는 차별은 상대적으로 일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 무감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익숙하다는 것이 그래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00스러운’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제야 우리는 서로를 그 자체로 직시할 수 있고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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