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불쾌감에 얼굴을 찌푸렸다. 폭염이 지속되는 나날이 계속돼서 찌푸린 게 아니다. 조간신문 1면을 확인하다 의 1면을 봤기 때문이다. “동성애는 사랑이 아닙니다. 혼자 늙고 결국엔 비참해집니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수 많은 대중들이 보는 신문의 1면으로 나오다니, 그간 ‘한우의 한숨, 굴비의 눈물’ 같은 괴악한 1면 기사들을 보면서 심신을 단련했지만, 이번 의 1면 기사는 그간의 심신단련을 무너뜨렸다. 제목에서 올라오는 짜증을 간신히 참고, 도서관에서 기사를 죽 읽었다. 탈 동성애자라고 밝힌 노인이 병상에 홀로 쓸쓸히 누워 있었다. 그가 사실상 국내 첫 트랜스젠더라는 걸 설명했다. 노인은 과거 게이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살아갔다. 하지만 척추측만증 수술을 받고 수술이 잘못돼 다시는 걸을..
지역에서 사회활동을 하는 동네 주민들과 교류할 때가 종종 있다. 대부분 사회문제에서 비슷한 의견이 나오고, 그 의견을 바탕으로 세밀하게 들어가면서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지역 내에서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면 전개가 잘 안된다. 지역 특성상 대공장 정규직 블루컬러 남성이 주류다. 당연히 마초적인 문화가 강하다. 때문에 페미니즘 운동의 진척도가 느린 편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체험하니 꽤나 간격이 벌어져 있다는 걸 느꼈다. 평생을 마초적으로 산 남성들이다 보니, 아무리 진보적이라지만 여성주의를 제대로 접한 적이 없어 기초적인 지점부터 쉽고 천천히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대부분 가족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때문에 페미니즘을 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
‘답다’는 말의 울타리 "그 남자는 너무 게이 같았어.", "걔 내 스타일 아니야. 좀 여자애 같아." 대화를 나누던 친구는 유난히 ‘~같다’는 말을 자주했다. 게이 같은 게 뭐고, 여자애 같다는 말이 어떤 이미지를 가리키고 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으면서도 그 말이 주는 불편함에 ‘여자 같다, 남자 같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는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다운 것, 여자다운 건 구분할 수 있어. 남녀차별 그런 걸 떠나서.” 당시 나는 그녀의 대답에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수긍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무리 그래도’ 남녀간에 구별점이 있다는 의견에 퍽 당황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그 구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여자 같다’는 말이 보편적으로..
77만 3600원 나는 어려서부터 잡지가 좋았다. 다른 매체에 비해 다루는 소재가 자유롭고, 일정한 틀에 얽매여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잡지 매체의 자유로운 성향은 필자가 자신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인 의견을 드러내야만 하는 일종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필자가 독자 앞에 당당하게 등장할 수 있는 환경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이유로 딱딱하고 건조한 문체보다는 친밀하고 소화하기 쉬운 문체를 선호했고 읽는 재미 외에도 이미지 콘텐츠를 누리고 종이 질감을 느낄 수 있게끔 다양한 부분에 신경을 써야 했다. 그렇게 잡지 기자는 ‘기자’ 보다는 ‘에디터(Editor 편집자)’로 안착하게 되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우리 삶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잡지를 몹시 좋아했다. 미용과 패션, 한창 뜨고 ..
소수자 혐오와 2016년의 한국 힙합쫑블리 힙합계의 뜨거운 감자인 가 최근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2012년 첫 선을 보인 이 프로그램은 관객이 책정한 공연비로 승패를 갈라 우승자를 뽑는다. 긍정과 부정 측 평이 공존하지만 특히나 혐오 표현이 포함된 가사를 여과 없이 내보낸 문제로 여러 번 논란이 됐다. 지난 시즌의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송민호는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가사로 여성에게 성적 모욕감을 준 것은 물론 산부인과 의사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성명서에 직면하고 사과한 바 있다. 이번 시즌의 우승자인 비와이의 ‘F5’의 가사 중 “여성의 동성애는 분명 나로 인해 감소 왜냐면 내 Flow에 흥분하거든 레즈비언도”와 같은 성소수자 혐오적인 가사로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
유가하락과 경제 불황으로 인하여 중공업 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작년부터 울산, 거제에 있는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줄도산을 겪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이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면밀하게 조사했다. 사례 1. 하청업체 ‘물량팀’ 노동자 A씨 A씨는 거제 대우조선 하청업체에서 소위 ‘물량팀’으로 불리는 ‘하청의 재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2년을 일했다. 대개 2년을 일하면 하청 정규직이 될 수 있지만 A씨는 그렇게 될 수 없었다. 물량팀을 관리하는 업체가 2년이 채 안돼 폐업을 하기 일쑤였다. 김씨는 여러 번 회사를 바꿔 계약했다. 그러던 와중, 대우조선해양의 적자가 심해지면서 수주가 끊겼다. 일감이 없어지자 A씨의 물량팀은 해체됐다. 하지만, A씨는 월급을 제대로 받지 ..
말이 아닌 행동으로Deeds not Words-영화 ‘서프러제트’ 후기 쫑블리 1900년대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의 국내 개봉 소식에 6월 말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그리고 6월 26일, 강변 CGV에서 40대 남성이 옆자리 여성 관객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한 후 현장에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소식을 듣고 여성참정권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를 상영하는 곳마저 여성 혐오범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생각에 멍했다. 좀 더 여유 있게 볼 생각이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져서 다음날 바로 영화관을 찾았다. 주인공인 가상 인물 ‘모드 와츠’는 불합리한 현실 속에 있으면서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현재의 소소한 안온함에 매몰된 인물이다. 그렇지만 같은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남편은 모드보다 노동시..
발끝에서부터 진동이 느껴졌다. 그러다 갑자기 ‘우우우웅’ 소리가 들리더니 도서관 건물이 흔들렸다. 지진이었다. 처음 느낀 진동으로 속이 메슥거렸다. 열람실은 삽시간에 공황상태에 빠졌다. 사람들이 술렁였고, 몇몇은 불안에 떨기도 했다. 나 역시 불안했다. 그만큼 큰 진동은 태어나서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많은 생각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건물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일단 아는 사회부 기자님들께 연락을 돌릴까, 설마 죽는 건 아닐까, 엄마는 안전할까 하는 생각들이었다. 그러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고리원전에 이상이 생기진 않았을까?’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부산과 울산에 걸쳐있는 고리원전(원자력 발전소)단지는 우리나라의 첫 원자력 발전소이자, 세계에서 가장 원자력 발전소가 밀집..
김정현 #1 스페인 남부 말라가에서 태어난 A씨는 작년부터 홍콩에서 살고 있다. K-POP을 사랑했고 홍콩에서 온 남자친구를 사귄 덕일까. 2012년에만 하더라도 극동아시아에 호기심 많고 마냥 밝은 대학생이었다. 올해 홍콩에서 다시 만난 그는 삶에 찌들어 있었다. 약혼한 남자친구는 취업은커녕 집에서 게임에 빠져있다. 기계공학 전문학교를 나왔지만 홍콩에는 일자리가 부족했고, 중국으로 나가기에는 부담스러워 한다고 했다. A씨는 인문학 학사학위만 들고 고국을 떠났다. 스페인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유탄을 직격으로 맞은 나라다. 개중에도 A씨의 고향 안달루시아 지방의 절망이 깊었다. 다른 산업은 부족하고 주로 관광업으로만 먹고 살던 지방이라 2012년 청년실업률이 최대 50%에 달했다. 그는 홍콩에서 불..
'프로불편러'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불편함을 말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로 SNS 및 여러 커뮤니티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고통을 겪거나 명확한 피해를 입은 때에도 쓰이고, 약간 거북할 때도 종종 쓰인다. 때문에 피해가 경미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왜 '편치 않음'을 말하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을까? 3가지 정도의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분위기를 깨고, 구성원 전체를 편치 않게 한다. 다른 구성원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면 더욱 그렇다. 어떤 점이 불편함을 초래했는지 민감하고 조심스러워지며 편하게 느끼던 구성원들은 일정 정도의 미안함이나 죄의식을 공유하게 된다. 이 점을 싫어하는 것이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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