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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문제는 그게 아니다

한결또바기 2017. 2. 18. 01:58

해당 작품 전시 작가인 이구영 화가는 "여성 폄하의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김정현(또바기)



한 여성이 강남역에서 살해된 지 3개월 전의 일이다. 한 유력 언론사의 인턴기자로 일하던 나는 SNS에 내 이름을 내건 카드뉴스를 기획하고 있었다. 


웹 상에서 성 갈등은 이미 오래된 문제였다. 한 번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접근해보고 싶었다. 내가 속한 부서는 타 부서에 비해 아이템 선정이 자유로웠다. 


그러나 그 주제를 들은 팀장 선배는 얼굴에 미안함이 섞인 난색을 표했다. “다치면, 오래 못 한다” 

맞다. 욕만 먹고, 독자 이탈이 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기획 의도대로 진지하게 접근해 줄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국회 의원회관의 ‘더러운 잠’을 보며 그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언론은 새누리당과 표창원 의원의 대결 구도에 주목했다. 새누리당을 비웃는 두 의원의 영상도 주목받았다. 본회의장 앞에 도열한 새누리 의원들 앞에서 표정에 입 꼬리를 올리며 입장한 표창원 의원, 박근혜 대통령부터 사퇴하라고 외친 이재정 의원이었다. 


양적으로 따져 봐도 표창원 의원의 징계 사실에 대한 기사는 거의 전 언론에서 다루었다. ‘더러운 잠’에서 촉발된 여성 혐오, 표현의 자유 논쟁에 대해서는 오피니언 내지 일부 언론에 그쳤다. 이 문제에서 만큼은 분명, 언론의 관심이 ‘많이’ 덜하다.



언론의 책임을 묻고 싶지는 않다. 대규모 언론사 기자들은 많이 팔리는 기사를 써야만 한다. 탄핵 정국이라는 환경 아래에서 ‘더러운 잠’은 사고를 쳤다. 그런 사고가 미치는 파급력을 잘 드러내는 게 좋은 정치 기사다. 잘 팔리면서 사람들이 알고 싶어할 내용이니 말이다. 


그렇다. 우리 언론은 이런 환경 속에서 상대적으로 리스크 대비 효율이 낮은 성 갈등에 대해 조명하기를 꺼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묻어두고 썩혀버린 한국 사회 내면의 성 차별과 갈등의 분노는 작년 5월 강남역에서 수 백장의 포스트잇으로 나타났다.



갈등은 해소돼야만 한다. 갈등이 깊어지면 상대방을 혐오하게 된다. 혐오는 곧 분열로 이어지며, 한 사회가 무너지는 단초가 된다. 그러나 누구도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그 갈등이 구조적인 문제이며,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 결말은 비참하다. 애초에 표창원 의원은 도의적인 책임 밖에 없었다. 


풍자화를 그린 화가와 상처 받은 여성들은 어디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더러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갈등의 벽돌이 하나 더 쌓여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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