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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이보고 망했다 하지마라

한결또바기 2017. 1. 24. 00:01

작년 말 서울 동아일보 옆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8회 언리미티드 에디션 현장 © 언리미티드에디션 기획팀


김정현(또바기)


이제는 종이책 도매상까지 망했다. 종이신문, 종이잡지, 종이책. 종이 옆에 위기가 붙은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재작년 9월 가수 요조가 북촌에 독립서점을 열자 이슈가 됐다. 연예인이기도 하지만 왜 하필 서점이냐는 게 관심을 끌었다.


인터뷰가 실린 <우리, 독립 책방>을 보면 요조는 서점을 열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지인들의 걱정을 원 없이 받았다고 했다. 부동산 중개사들의 걱정도 받았다. 권리금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지대 높은 북촌에 1층 서점자리를 물어봤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자칭 ‘시한부 서점’의 이름은 무탈하기를 바라는 ‘무사(無事)’다. 올해로 2년차다. 직원 하나 없이 운영하면서, 자기 취향에 맞는 독립출판물만 골라 팔면서도 꿋꿋이 살아있다.



요조는 왜 책방을 열었냐는 질문에 “하고 싶어서”라 답한다. 그 행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절실함이 있다. 절실함은 오히려 난관이 클 때 더 빛난다. 요즘 종이를 가지고 매체를 만들거나 판다는 것 자체가 곧 진정성이다. 


서적 도매상 송인서적 부도의 안타까움은 비단 출판계만의 일이 아니다. 부도를 알리는 기사로 하여금 독자들은 종이에 몸 담은 사람들을 걱정한다. “사람들 요새 책 안 읽는데”, “사람들 요새 잡지 안 보는데”, “사람들 요새 신문 안 보는데”. 그러면서 절실함을 접고 현실과 타협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창업을 하는 20대를 보면서 열정과 도전 정신에 대해서는 쉽사리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종이책을 쓰고, 팔겠다는 사람은 무조건 뜯어 말린다. 


전자나 후자나 위험한 걸 알면서도 하겠다고 결심했다는 점에서는 같다. 창업의 경우에는 과한 찬양이 현실 감각을 잃게 만들고 망하게 한다. 반면 지나친 걱정은 열정을 가진 창업자의 의지를 꺾어 놓는다. 종이도 다를 건 없다. 꼭 하고 싶다는 사람을 말릴 이유는 없다.



종이에 열정을 쏟으려는 이는 창업만큼이나 많다. 독립서점 플랫폼인 ‘어나더북스’에 등록된 서점은 102 곳이다. 구글 지도를 이용해 만든 ‘동네서점지도’에는 177곳이 등록되어 있다. 


독립출판은 작년 출판계를 이끌기도 했다. 작년 미국 아마존의 전자책 시장 점유율이 20%대로 내려앉은 반면, 독립 출판물의 점유율이 45% 가까이 높아졌다. 


8회째를 맞은 작년 <언리미티드 에디션>에는 100여 종의 독립출판물이 모였고, 3일 만에 연 인원 1만 5천명이 다녀갔다. 많은 사람들의 진정성이 모인 연대가 일상이 된 위기를 이겨내고 있다.

 


‘책방 무사’를 본 북촌 동네 어르신이 요조에게 말했다. “이 동네에 책방은 10년만이야” 요조는 비장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책방 무사’는 1년 4개월 동안 뜻이 맞는 사람들과 북촌의 지역 주민들을 만났다. ‘시한부 책방’은 오늘도 무사하다. 


비록 시대에 맞지 않는 일이라도, 진심과 정성을 다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큰 행복이다. 주변에 종이 쪼가리를 만들고 파는 사람이 있다면, 섣불리 단정 짓고 패배감을 주지는 말자. 있는 그대로 상대방의 진정성을 인정하자. 그리고 함께 하자. 종이와 출판을 구하는 작은 시작이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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