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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무래도 상관없다

한결또바기 2017. 1. 5. 10:06



김정현(또바기)


대선의 해가 밝았다. 설이 다가오면 항상 나오는 기사가 있다. 밥상머리의 주제로 어떤 정치인이 물망에 오를까, 누가 가장 이목을 끄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속한 대가족의 대선후보군에는 언제나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있었다. 한 사람 건너면 친하다는 제주도에서, 그를 모른다 말하는 사람 찾기 힘들다. 생각해보니 우리 아버지도 원희룡의 고향 친구라고 말씀하신 적 있으니 말이다. 왜 원희룡이냐. 잘 생겼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 강단이 있었던 모습을 기억한다. 이 시골 촌구석에서 서울대를 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원희룡 지사가 육지 언론의 유력 대선후보 물망에 오른 적은 손에 꼽았다. 오른다 하더라도 비주류, 혁신계 따위의 이름표가 달린 군소 후보였다. 결국은 감성적인 구석이 역력하다. 그저 제주 사람들의 대표였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던 사람을 꼽는다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있다. 유엔 사무총장, 만국이 모인 연합기구의 수장이 한국인이다. 그 때 감명을 받으면서 읽은 책이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다. 반기문 전 총장의 지지율이 36%(문재인과 양자대결 시, CBS <김현정의 뉴스쇼>-리얼미터)로 조사되었다. 지지자들에게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 시절에 시리아 내전을 사실상 방치하고, 논란의 한-일 과거사 합의에 찬사를 보냈다는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고향에서는 반기문 지지자 모임이 정식으로 결성되었다. 그들이 만든 반기문 찬가라는 것은 눈살이 찌푸려진다. 지지자들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은 인간의 본능을 정확히 꿰뚫는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의’ 대표라면 그 흠결도 덮어주고 싶다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반기문 전 총장의 임기 10년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반기문의 흠을 지적하는 데 무척이나 소홀했다. 2014년 3월 시리아 내전이 발발했을 때부터 최근까지 UN의 직무유기를 비판하는 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때부터 서구권에서는 전임 코피 아난을 들어 반기문의 무능한 대처를 우려했다. 하물며 언론만일까. <경향신문>에서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반기문 전 총장에게 23만 달러를 건넸다”는 증언을 검찰이 묻어버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타이밍은 중요하다. 대선이 되어서야 채찍질을 가하니, 감성적인 지지자들은 감정적인 대응을 내놓는다. 총장님을 음해하지 마라. 자신들이 불리하니까 지금에 와서 올곧은 사람을 음해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유엔 사무총장이 모국 정치에 개입하는 건 1946년 채택된 11호 결의에도 맞지 않는다. 국제적으로 반기문의 대선 출마는 논란이지만, 지지자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는 아직도 중, 고등학교 독후감 과제의 단골 손님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은 반기문이 쓴 책이 아닌 신웅진이라는 언론인이 쓴 책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반기문을 읽기 위해 그 책을 사며, 우리의 대표를 배우고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우리 사람' 본능 덕택이다. 반기문 전 총장은 우리의 본능을 자극해 왔다. 그의 지지율 36%의 뒷배경은 우리의 본능이다. 이렇게 본능은 무섭고 지독하다. 



본능은 때로는 이성을 멀게 한다. 때로는 본능이 사회에 득이 되는 일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이 사회에 해가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안다. 이를 억제하려 법을 만들고, 이성으로 스스로를 통제한다. 반기문 전 총장의 지지율 속에서 한국인의 ‘우리 사람’ 본능을 빼고 보면 남는 것은 없다. 지금껏 우리는 이를 자제하지 못했다. 대통령으로서 반기문을 상상해보면 아직 '우리 사람' 본능 외에 그 알맹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반기문의 지금까지 행보를 돌이켜본다면, 아무래도 위험한 본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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