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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믿음의 값은 얼마인가

쫑티 2017. 1. 14. 22:53

믿음의 값은 얼마인가

쫑블리


1 7,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인사 청탁 문제를 다뤘다. 정권 실세가 경위급 승진에 개입했을 뿐 아니라 경찰 공무원 채용에까지 영향력을 미쳤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탄핵안 가결로 조기 대선이 유력한 정국이어서인지 별 쟁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무런 권한과 책임이 없는 민간인에게 정책 결정을 의존해왔다는 사실이 JTBC <뉴스룸>에서 밝혀진 이후 국민은 분노, 불신, 상실감 등의 집단 우울증을 앓고 있다. 그뿐 아니라 정유라 씨의 학사 비리, 일가의 축적 과정이 불명확한 천문학적 재산까지 알려지며 청년층의 상대적 박탈감과 울분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더군다나 비교적 공정할 것으로 기대되는 공무원 시험에서도 부정이 있었다는 의혹은 얼마 남지 않은 신뢰의 잔액을 탕진하기 충분했다.


1 12, ‘문화계 블랙리스트작성 및 관리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전직 청와대, 문체부 핵심 인사 3명이 구속됐다. 이 리스트에는 세월호 진실규명을 요구하거나 야권 대선 후보 지지 선언 등에 동참한 9,473명의 예술인이 이름을 올렸다. 이 명단에 따라 정부의 문화계 예산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가 하면 영화진흥위원회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 부문 출품작 심사에서 수상이 유력했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를 선택하지 않았던 것도 블랙리스트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생각 때문에 받는 불이익, 정부가 앞장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함으로써 벌어지는 부조리는 50년대 매카시즘의 기록에서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블랙리스트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사상 및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중대범죄이다.


15 12 22일 경향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한국사회에 대해 국민 절반 이상은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한다. 경제, 사회적 분배구조와 권력기관의 공정성에 대한 인식이 35%를 밑돌며 빈부 격차와 이념에 따른 갈등이 심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84% 이상이다. ‘100% 대한민국의 기치 아래 출범한 박근혜 정부 출범 4년 차를 앞두고 나온 기사였다.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은 다시 말해 공동체의 구성원인 시민들이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사회 정의가 실종되었음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공적 신뢰의 부도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97년 외환위기는 한국인들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국가적 사건이다. 국가 부도 직전의 상황에서 대통령이 방송에 나와 사과하고 기업들이 무더기로 도산하는가 하면 많은 실직자들이 노숙자로 전락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공기업 민영화가 이어졌고 생활고로 하루에 25명씩 자살한다는 보도에도 공동체 내의 개인을 지켜주는 사회는 보이지 않았다. 사회 안전망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면서 좁게는 내 가족에서부터 믿을 수 있는각종 연줄에 집착하는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01년 구제금융 195억 달러를 조기 상환해 IMF 관리체제를 졸업했지만 이미 공적 영역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파괴된 뒤였다. 그리고 17년 후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은 일종의 진리 명제가 되었다. 끊이지 않는 군납 비리와 군 내 의문사는 덤이다.


공적 영역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집단이 존속할 수 있을까? 무신불립(無信不立), 공자가 정치의 기본에 대해 한 말이다. 공자는 정치의 핵심 요소로 식량, 병기, 신뢰를 꼽았다. 병기와 식량은 버릴 수 있으나 결코 버려서는 안 될 것으로 신뢰를 중시했다. 봉건시대의 정치철학을 오늘날 일대일로 대응시키기는 부적절하나 주권자인 국민이 통치자와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을 때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씨의 실정으로 박정희 시대의 신화가 민낯을 드러낸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공동체에 대한 신뢰까지 전소한 것이 마음 아프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상처 입은 국민에게는 위로와 치유가 필요하며 이는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 그것은 특검이 그간의 범죄를 명백히 밝혀 기소하고 헌법재판소는 탄핵안을 인용함으로써 내디딜 수 있다. 우리가 마땅히 요구해야 할 믿음의 값은 얼마인가? 그 대답으로 한국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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