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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양의 격률과 맨스플레인

쫑티 2016. 8. 17. 09:21

양의 격률과 맨스플레인

쫑블리

 요즘 고등학교 1학년들은 대화의 원리라는 걸 배운다. 대화의 원리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준수해야 하는 규칙으로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제시되었다. 이 중 협력의 원리가 있다. 이는 대화 목적에 성공적으로 도달하기 위해 각 단계에서 대화 참여자가 지켜야 하는 원리로 크게 네 가지 격률을 가지고 있다.

 

  먼저 진실한 정보만을 제공하도록 노력하라는 질의 격률이 있다. 말하는 사람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거나 타당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는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화제와 관련되는 말을 하라는 관련성의 격률이 있다. 이는 대화 상황에 적합한 말을 하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모호하거나 중의적인 표현을 피하고 간결하고 조리 있게 말하라는 태도의 격률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주인공인 양의 격률이 있다.

 

  ‘양의 격률은 필요한 만큼만 정보를 제공하라는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제공하거나 최소한의 정보도 주지 않으면 바람직한 대화를 가로막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 하위 요소로는 첫째, “지금 주고받는 대화의 목적에 필요한 만큼만 정보를 제공하라”, 그리고 둘째로 필요 이상의 정보를 제공하지 말라.”는 원칙이 있다. 이 둘째 원칙은 2014년을 뜨겁게 달군 바 있으며, 2016년 하반기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그 쓰임을 놓고 이견이 오가는 맨스플레인과 관련이 깊다.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을 합한 신조어 맨스플레인은 남자들이 무턱대고 여자들에게 아는 척 설명하려 드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단어는 2010뉴욕 타임스올해의 단어로 꼽혔으며 2014년에는 옥스포드 온라인 영어사전에 실렸다. 뿐만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2014년 올해의 단어로 꼽힐 만큼 맨스플레인은 사람들의 많은 호응과 공감을 얻은 단어이다. 맨스플레인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계기인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수요에 불을 붙였다.

 

  솔닛은 대화가 어긋나는 것은 내가 알고 상대가 모르는 것을 내게 가르치려 들 때다.”라며 맨스플레인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비대칭적인 젠더 위계에 의해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사소한 괴로움, 폭력으로 강요된 침묵, 폭력에 의한 죽음은 모두 하나로 이어진 연속선상의 현상이다. 결국 맨스플레인은 결국 필요 이상의 정보를 제공하지 말라.”는 양의 격률의 두 번째 원칙을 어길 때 발생하는 것이다.

 

  이 단어가 등장한 이후, 남성이 대화에서 성차별적 태도로 여성의 말을 자르거나 폄훼하는 일에 대한 여성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해시태그 ‘#오빤다알아로 검색하면 여성들이 자신이 겪었던 맨스플레인경험을 토로한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들이 줄곧 겪으면서도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좋은 뜻으로 알려주려고 한 거겠지.”와 같이 좋게 생각해야만 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현상을 가리키는 이름이 생기면서 나타난 변화일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신조어가 그렇듯이, ‘맨스플레인역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일부 남성의 잘못을 전체 남성의 것으로 일반화하는 성차별적 용어라거나,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상대를 무시하고 자기 말만 퍼붓는 상황이 있다거나, 성차별적 상황이 아닌 경우에까지 용어를 오남용하면서 성별 대립만 조장한다는 등의 비판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비판은 단어가 지칭하는 현상이 실존하는지, 예외적 사례가 아닌지, 현상의 규명과 대처가 필요한지 등의 질문을 던졌을 때 대체로 라는 점에서, ‘맨스플레인이 우리에게 유의미한 단어임을 다시금 확인해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여성인 친구와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그는 "남자들은 그런 자신감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옳든 그르든 내 말이 받아들여질 것이다. 하는 자신감이. 반면에 여자들은 아무리 맞는 말인 것 같아도 눈치를 보고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만 말하거나 하죠."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남성의 주장이 뚜렷한 것은 미덕으로 보는 반면, 여성들의 경우 드세다거나 기가 세다거나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관습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관습이 잠재적 교육과정이 되어 남성에게 더 많은 발언권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남성으로서, 다른 남성들이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를 보고 불편해 할 것을 안다. 실제로 여성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해당 표현에 대해 격렬한 거부감을 나타내던 친구를 두셋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때 이 글을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맨스플레인너는 남성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설명을 덧붙이는 성차별주의자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남성이 여성을 기본적으로 뭔가 모르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말을 일방적으로 쏟아 붓는 태도이다. 다시 말해 “(요구받지 않은)필요 이상의 정보를 제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여성혐오적 사회에서 이십여 년 간을 성장해온 터라 요구받지 않았는데도, 무의식적으로 대화 상대가 모를 것이라 넘겨짚고 저렇게 맨스플레인을 할 때가 있다.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 위에 있는 사회에서 남성으로 살아가는 이상, 상대를 존중하겠다는 내 생각과는 무관하게 얼마든지 여성혐오적 행동이나 발언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의 생각과 행동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성 평등한 태도로 임하고자 자신을 다잡으려고 노력한다.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 주는 대화의 원리의 하나인 양의 격률을 준수할 때, 우리는 상호작용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 때 대화의 목적에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제공함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무의식적으로 내재된 성차별적 관성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 함으로써 우리는 맨스플레인을 하지 않고, 대화 상대를 언제나 존중하며 즐겁고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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