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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힘

한결또바기 2016. 4. 16. 02:16


홍콩 완짜이 블루하우스. 무료사진

김정현

 홍콩의 완짜이(灣仔, Wanchai)는 도심 속의 섬과도 같다. 세계가 자랑하는 홍콩의 심장 센트럴(Central)의 장막 속에 숨은 사람 냄새 풍기는 마을 구역이다. 갓 닦은 유리 트로피 같은 홍콩상하이은행(HSBC)을 지나 인공적인 공원들을 걷다보면 어느 순간 쇼핑몰이 아닌 시장이 나타난다. 그곳에서는 노인들이 맞바둑을 두고 사람들은 훈수를 둔다. 명품이 사라지고 세상의 모든 것을 왁자지껄하게 흥정한다. 동전 몇 닢에 끈 나간 시계를 고치고 쇼핑몰 어디서도 구할 수 없던 슬리퍼를 손에 쥐었다. 계속 걷다보니 마을의 깊은 곳에 흉흉한 4층 건물이 보였다. 건물의 반은 파란색인데, 반은 시멘트가 드러나 있다. 도로와 맞닿은 정면은 공사장 철제 빔이 가리고 섰다. 블루하우스(藍屋)다.

 1층의 House of Stories는 박물관이지만 문도 경비도 매표소도 없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상 속의 복덕방을 보는 것 같았다. 문 앞에서 마주한 중국어 현수막에는 읽을 수 있는 한자가 반대(反對)밖에 없었다. 물어보니 2차 완짜이 재개발에 반대한다는 현수막이라고 했다. 여기는 박물관이지만 이 건물은 연립주택이며 사람이 산다고도 했다. 3층을 올려다보니 화분과 빨래가 놓여 있었다. 한 때 33가구가 살던 이곳에는 지금 4가구만이 남아있다. 블루하우스는 140살 먹은 홍콩 최고령 건물이다. 

  블루하우스는 완짜이의 역사를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낸다. 1870년대 병원으로 처음 자리를 잡았다가 1920년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고쳐졌다. 완짜이는 금융과 쇼핑의 허브가 된 홍콩을 따라가지 못했다. 화분 너머로 초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이 근처의 아파트는 홍콩 전망대가 있는 빅토리아 피크(Victoria Peak)가 맞닿아 있다. 영국 통치 시절의 지배자들이 살던 부촌이다. 1970년 사람들은 상수도부 건물을 칠하고 남은 페인트로 건물을 가렸다. 건물의 4면 중 도로를 접한 두 면만 칠할 수 있었다. 

 블루하우스의 네 가정은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홍콩은 중국과 합해졌지만, 여전히 땅은 부족하고 건물과 집값은 함께 치솟았다. 이들에게 떠날 기회는 있었지만 떠나지 않았다. 2006년 홍콩 정부는 완짜이를 국제 업무 및 쇼핑특구로 재개발하면서 블루하우스를 철거하려고 했다. 당시 남아 있었던 33가구는 건물을 지키기로 했다. 블루하우스는 늙었지만 마을의 심장이다. 블루하우스가 없으면 완짜이 마을도 없다. 지금도 완짜이의 마을공동체 역할을 하는 세인트 제임스 복지관(Saint James Settlement)은 합의안을 제시했다. 주민들을 쫓아내지 않는 대신 블루하우스를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만들자는 프로젝트다. 해가 바뀌고 정부가 재개발을 밀어붙이자, 완짜이 주민들은 시민들과 연대해서 항구 퀸즈 피어(Queen’s pier)에서 7개월 간 농성했다. 연 인원 1천명이 시위에 참여하자 정부도 손을 들었다. 블루하우스는 지켜졌고, 박물관이자 사회적 기업 House of Stories가 탄생했다. 

 살아남은 블루하우스는 지금도 완짜이 공동체의 심장이다. House of Stories는 주기적으로 마을공동체 모임을 주도하고 지원한다. 도시 생활에 지친 주민들의 공동체에 에너지를 실어준다. 엽서와 예술작품을 함께 만들면서 가르친다. 독립출판물을 만들어서 공론장을 조성한다. 블루하우스의 에너지는 도로를 혈관삼아 생기 넘치는 완짜이를 지켜냈다. 마을 주민들에게 번져나간 에너지는 다시 돌아와 마을의 생명을 이어나간다. 홍콩을 방문했던 지난 2월, 정부는 호텔과 관광지를 건설하는 2차 완짜이 재개발안을 추진하고 있었다. 블루하우스는 그대로 두지만, 이번에는 다른 건물들이 목표다. House of Stories와 세인트 제임스 복지관은 반대 현수막을 붙이고 정부와의 협상을 논의하고 있었다. 

 황혼을 맞이하던 140살 먹은 건물이 살아남았다. 집과 땅이 부족한 홍콩 속 최고 부촌의 한가운데에서 서민적인 마을이 자생한다. 완짜이 마을 공동체의 힘이 기적을 만들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자취방에서 살고, 아침에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지만 우리는 외롭다. 완짜이와 그 곳 사람들이 부럽다. 마을의 힘이 무척이나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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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개발과 관련한 최근의 상황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House of Stories가 재개발 사업으로 6개월 간 잠시 이전해서 운영한다는 공지가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관련 상황에 대해 페이스북 메시지로 질문을 보냈지만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 완짜이 공동체가 정부와의 안정적인 합의를 이끌어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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